‘애치슨라인(Acheson Line) 2.0’.지난 4월 11일 잇달아 열린 미·일 정상회담과 미·일+필리핀 3국 정상회담을 보면서 떠올린 단어다. 공교롭게도 한국 야당의 총선 압승이 결정되던 날, 일본과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애치슨라인 2.0’이 등장했다. 이날 군사안보에서 시작해 경제·정보·첨단산업에 이르는 전방위 협력방안이 ‘미·일+필리핀’ 사이에서 체결됐다.1950년 1월 창안된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이 본래의 애치슨라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애치슨라인이 한반도를 비껴간 것이 1950년 6월 25일 북한을 남침으로 이끈 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화가, 아니 예술가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떠올릴 듯하다. 동양인 가운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화가는 누구일까?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19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90살 장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가 가장 먼저 언급될 듯하다. 근대 유럽 예술에 영향을 준 자포이즘(Japonisme)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다빈치가 ‘모나리자’라고 할 때, 호쿠사이는 어떤 작품이 최고에 올라설 수 있을까? ‘부악 36경(富嶽三十六景)’ 중 하나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
20여년 전 미쉐린 레스토랑 순례에 빠졌었다. 식욕도 왕성하고 먹는 것이 남는 것이라 믿던 때였다. 여행지에 가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현지 미쉐린 레스토랑이었다. 큰마음 먹고 스리스타 미쉐린에 들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빕구르망(Bib Gourmand)이거나 원스타에 그쳤다. 5년 전 원스타 서울 미쉐린에 들렀다가 가격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지금은 가격이 훨씬 더 올랐겠지만, 유럽 미쉐린의 경우 조금 무리를 하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간이다. 레스토랑이 처음 생긴 것은 1789년 프랑스혁명 직후다. 왕이나 귀족이
서울 도착 3주째에 중국산 온라인 플랫폼인 테무(www.temu.com)를 처음 사용해봤다. 2만8064원에 무려 21개 제품을 구입했다. 주문 후 정확히 1주일 만에 집앞 현관에 물건들이 도착했다. 한국까지 와서 글로벌 유통시장의 이단아 테무에 데뷔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한국의 고물가에 대한 좌절과 반발 탓이다. 5년 만에 들른 한국은 거품 같은 고물가의 갈라파고스섬으로 느껴진다. 짜장면 한 그릇 8000원, 사과 하나 5000원만이 아니다. 시든 장미 한 송이가 최하 5000원, 샴푸 하나에 1만원은 기본이다.
서울 생활 2주째다. 지난 5년 동안 외국에 머물면서 보고 듣던 한국의 모습이 현실로 밀려든다. 인터넷 공간 속에서 만난 세계와, 피부와 공기로 느끼는 아날로그 세상은 전혀 다르다. 현실로 체감한 2024년 한국은 ‘언제나처럼’ 복잡하고 바쁘다.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신이 없다. 치솟는 물가로 인해 뭔가 ‘붕 뜬’ 것 같은 생활도 일상화되고 있다. 서울 풍경이지만 가격표가 아예 없는 식당이나 가게가 흔하다. 폭등하는 물가로 인해 계획하고 예상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빨리 빨리! 그렇게 늦게 걸으
거의 5년 만의 한국이다. 지난 팬데믹 기간 미국을 떠나 튀르키예 등 아시아 각국을 여행하다가 이제야 편도 1만5000엔짜리 저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리타를 출발한 비행기 안의 300여명 승객 가운데 80% 정도는 한국의 2030세대로 보인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위력이 피부로 느껴진다. 여자 아이돌그룹과 남자 배우들의 모습을 담은 광고와 간판들이 공항 안팎에 넘쳐난다.이미 한 세대 전 얘기지만 외국에서 김포공항으로 들어올 때의 풍경이 떠오른다. 경주 다보탑, 한강을 내려다보는 남산, 경복궁과
지난해 4월 흥미로운 소식 하나가 유엔발 뉴스로 전 세계에 타전됐다. 인도 인구가 지난해 4월 말 기준 14억2577만명이 되면서 중국 본토 인구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다. 인도 인구는 늘고, 중국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수세기 걸쳐 세계 최대 인구대국에 올랐던 중국이 마침내 인도에 1위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당분간 인구대국 인도의 위치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중국은 계속 내리막이고, 3억3000만명으로 세계 3위인 인구대국 미국도 인도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 보면 인구격감, 나아가
신년에 들어서는 순간 올해 ‘절목(節目)’부터 살펴봤다. 원래 ‘나무의 마디’란 의미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유명한 인물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다. 출생이나 사망, 사건이나 작품 탄생시기를 기점으로 한 각종 절목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키다리 대나무가 그러하듯, 절목이 많은 나무일수록 강하고 유연하다. 절목에 둔감한 개인, 사회, 국가일수록 문명·문화 선진국에서 멀어진다. 올해 절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소설 속 배경이 이미 40년이 지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다. 1949년 영국인 조지 오웰이 펴낸 책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소리라는 관점에서 본 종교라고나 할까? 수많은 종교를 소리라는 잣대로 살펴볼 경우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인도에 머물면서 다양한 종교들을 접하며 떠오른 생각이다. 가톨릭 교회부터 살펴보자. 파이프 오르간이나 성스러운 합창단부터 머릿속에 펼쳐진다. 고딕풍의 높은 천장 아래에서 울려퍼지는 저음의 오르간, 남녀노소가 부르는 신의 찬양이 가톨릭에 새겨진 소리의 이미지다. 불교는 어떨까? 목탁이나 종소리부터 떠오른다. 몸과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켜나갈 수 있다.힌두교의 첫 이미지는 북소리힌두교는 어떨까? 개인적 판단이지만, 북소리가 첫 번째
‘간요로(漢陽楼)’.인도에서 일본으로 오자마자 즉시 찾아간 도쿄의 중식당이다. 비행기 안에서 중국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진보초(神保町) 거리의 간요로가 떠올랐다. 30여년 전 처음 들른 이래 단골로 삼아온 필자가 아끼는 공간이다. 간요로는 1911년 창업한 일본 노포 중식당의 대명사다.일본 여행 중 경험할 맛과 멋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노포다. 작은 빵가게에서부터 1673년 설립한 미쓰코시(三越)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정과 추억이 깃든 따뜻한 공간이 노포다. 오래됐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대변화,
‘14억 대지에 살아남은 최후의 역사.’인도 뭄바이의 관공조(關公廟)에 가서 느낀 첫 인상이다. 2000만명이 사는 대도시에 남겨진 ‘단 하나’의 중국 도교 사찰이다. 관공은 ‘삼국지’의 관우를 의미한다. 중국 도교의 상징이자 ‘돈의 화신’이기도 하다. 긴 수염으로 장식된 관우는 중국인 그림자가 있는 곳에 ‘반드시’ 존재한다. 중국인에게 돈은 종교 그 자체다.인도에 도착해 알게 됐지만, 차이나타운이 단 한 곳도 없다. 과거에 있었거나 관광용으로 개발된 이름뿐인 곳은 한두 군데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의, 중국인을 위한
용(龍)의 해다. 불을 뿜으면서 하늘로 오르는 신성한 동물이다. 십이지간 동물 가운데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전설의 동물이기도 하다. 중국적 세계관에 따르면 용은 오르기만 할 뿐 결코 내려가지 않는다. 흔히 미국은 독수리, 중국은 용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2024년 ‘용의 나라’는 추락하는 가속도가 엄청나다. 애초부터 ‘용=비상’은 환상이었을지 모른다.14세기 조선시대 이래 한국에 전해진 용 이미지의 100%가 중국산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때까지만 해도 용 스토리는 대체로 중국 바깥에서 전해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용이 자금
디지털 숫자에서 시작되는 신년이다. 1월 초 국내 신문·방송을 보자. 경제성장률, 출생률과 인구, 물가, 아파트 시세, 연금 수령액, 야구선수 연봉, 미국 중앙은행 금리, 국군장병 월급…. 수많은 디지털 통계나 전망이 몰려온다. 전부 외우기는 어렵지만 그 누구라도 느낄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불안과 걱정이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두렵다. 디지털의 저주라고나 할까? 숫자만큼 간단하고 편한 것도 없다. 그러나 차갑고 건조하고 금방 사라진다. 결론은 어둡고 두렵다. 심하게 말하자면 피하고 싶은 현실과 미래가 디지털
2024년 신년이다. 인도에서 맞이한 인생 초유의 새해지만, 인도인들을 보면 무덤덤하다. 도심부에서나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 똑같은 일상이 펼쳐질 뿐이다. 두 가지 이유가 배경에 있다. 먼저 ‘우가디(Ugadi)’라 불리는 힌두교 달력에 따른 신년 때문이다. 올해 우가디는 4월 9일이다. 힌두교 신자가 80%인 인도에서는 우가디를 새해 출발점으로 잡는다. 1월 1일에 무심한 이유는 인도가 종교행사 천국이란 점에도 있다. 필자 판단이지만, 인도는 2000여년 전 고대 로마 시대로 되돌려놓은 타임슬립(Time Slip)
‘100m, 19.87초. 기네스 신기록’.지난주 신문·방송을 통해 접한 흥미로운 기사다. 한국의 카이스트(KAIST)가 개발한 사족 보행 로봇의 100m 달리기 속도가 세계 1위라고 한다. 박수와 성원을 보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진부한 뉴스로도 느껴진다. 첫 인상이 ‘무미건조하고 통속적인 20세기 가치’ 정도로 와닿는다. ‘빨리, 크게, 멀리, 많이’라는 관점에서 1등 경쟁을 벌인 결과다. 빠른 로봇은 시간의 문제일 뿐, 누군가에 의해 금방 추적당할 ‘깨질 기록’에 불과하다. 내년쯤에는 중국발 100m 10초 로봇이 출현
미래의 나침반, 좌표, 길라잡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미래 초상화를 예감케 할 아이콘이나 장소, 인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1주일간 신문 방송을 대하면, 전 세계가 열광한다는 K팝 걸그룹이나 반도체, 냉동김밥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국력을 총동원해 준비했다는 2030 부산 엑스포 프레젠테이션을 봐도 비슷한 것들이 등장한다. 한국인 스스로 되묻고 싶을지 모른다. 과연 빌보드 1위 노래, 외국 투자와 무관한 한국 반도체, 얼어터진 김밥이 한국의 미래 초상화를 결정지을 요소라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은 부정적일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지난 11월 15일 미·중 정상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열린 회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21개 나라 정상이 참가한 APEC 총회보다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다. 사실 샌프란시스코 APEC은 공동서명은커녕 공동선언 하나 못 만든 채 말잔치로 끝났다. APEC뿐만 아니라 요즘 유엔을 포함한 다자간 국제회의는 중구난방 이벤트 무대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통일된 의견 자체가 불가능하다.미·중 정상회담은 한국에서도 연일 톱뉴스
이웃 일본의 올해 유행어 중 하나로 ‘도끼소비(トキ消費)’란 말이 있다. 도끼는 일본어로 시간(時)을 의미한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시간소비’인 셈이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잠시 유행하다가 팬데믹 록다운이 완전히 끝나면서 다시 급부상한 마케팅 용어다.도끼소비는 ‘참가’가 핵심이다. 특정 공간이나 시간에 맞춰 행하는, 다른 장소나 계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 소비행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와인 축제를 보자. 지난 11월 16일 이뤄진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출시에 맞춰, 보르도 지역 최고(最古) 역
‘비만과 문신.’팬데믹 종언 이후 나타난 ‘새로운’ 글로벌 현상이다. 지난 1년간 12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비만은 모든 세대의 공통 현상이고, 문신은 2030세대를 중심으로 40대 이하에 걸쳐져 있다.필자의 건강 유지법이지만 외국 여행에 나서는 순간 수영장부터 찾는다. 글로벌 시대의 긍정적 유산으로 수영장만 한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캄보디아가 한국보다 더 크고 깨끗한 수영장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믿을까? 문신과 비만은 외국 수영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풍경이다. 동서양 구별이 없다. 개미허리의
풍수지리는 한국인이 ‘굳게’ 믿는 신앙 중 하나다. 자손들의 번영이나 무병장수 같은 세속적 가치들이 풍수지리와 연결돼 있다. 존경과 흠모의 차원에서 역대 대통령 무덤 순례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 자신의 묫자리를 발굴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풍수지리에 대해 무심한 편이다. 죽음까지도 세속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것이 마뜩잖기 때문이다. 부처, 예수, 마호메트 그 누구도 자신의 무덤 자리를 거론하지 않았다. 더불어 풍수지리에서는 중요한 ‘뭔가’가 빠졌다는 점에서 멀리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풍수지리에서